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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면 이것은 자서전입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글을 적어 내리는 것뿐, 그것이 자서전이라 확언할 수 없지 않습니까.그렇다면 이 글은 뭐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저를 적어 내려가고 있는걸요. 아니요, 잘 보세요. 지금 이 글자들이 당신을 말하고 있습니까? 어머, 그럼 이걸 뭐라 말하는 거죠? 안타까운 당신, 바보 같은 당신, 이 글자들의 나열이 당신을 말하고 있나요? 아니군요. 그래요,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적어 내리는 이것은 당신을 잘 정리하지도, 정의하지도 않은 어절들입니다. 저는 그럼 이 무엇도 아닌 것을 받아 적어 내리고 있군요. 맞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기뻐합시다. 기쁘네요. 기쁘지요? 기뻐요. 그렇다면 밝게 웃어보세요. 그리고 당신, 그래요. 당신. 아닙니다, 적고 있는 당신이 아닌 당신. 화면 너머의 저를 충분히 상상하세요. 그 얼굴과 습관과 새어 나오는 목소리 맥박과 눈이 굴러가며 나는 끈적한 소리 마른 입을 적시기 위해 혀를 날름거리며 나는 쩍 하는 소리 이리저리 움직이는 어지간히는 열 개 되는 손가락이 플라스틱 재질의 자판을 부드럽게 누르는 소리 의자의 허리 받침이 뻐근히 움직이는 소리. 웃습니까? 즐거워 참을 수 없는 곳으로 인도해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사체를 상상하며 자기 행복을 뼈저리게 느끼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배제해놓곤 그것이 사실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에게 한탄하는 것입니다. 부러워합니다. 분해합니다. 까발립니다. 분해(分解)합니다. 없는 것을 그리워합니다. 있는 것을 매도합니다. 탄식합니다. 살아있습니까? 살아있군요. 즐겁습니까? 즐겁습니다. 머리가 한 대 맞은 것처럼 묵직이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눈앞이 침침하여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질끈 감았다 뜬 눈이 점성을 가지고 있다. 메마른 것이다. 숨이 가빠오자 명치 언저리에서 작은 무언가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내장에서 맥동이 느껴지는 것이다. 손바닥이 차갑게 식어간다. 머리를 들어 올리자 무언가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왜 이런 무르고 불편한 형태의 덩어리를 존재 가치 같은 기묘한 것을 판단할 만큼의 기관이 지배하고 있는가? 뇌를 이야기한다. 왜 무의미하게 태어났는가? 무의미함을 뭐라 생각해야 하는가? 주변에 존재하는 것들을 우리가 정의하며 의미를 갖췄다면 우리는 무엇이 정의하는가? 스스로 살길을 정의하거나 인생의 의미를 짚어가며 정의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종족의 번영만을 꿈꾸던 시대는 조용히 가라앉아 누구도 원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 기묘한 생김새를 가진 작은 생물에게도 마찬가지고, 나도 마찬가지이다. 너는 너를 닮은 생물을 좋아하지만 미묘하게 닮은 존재를 꺼린다. 그렇다면 너는 나를 꺼리는가? 뭐가 너를 포함한 족속들을 이루는 구성품인가? 육체, 정신. 이 두 개 중 어느 것도 보편적인 것들에 제대로 충족하지 못한 경우에도 너는 그것을 너와 같은 종족이라 여기지 않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부족한가? 무엇이 부족한 지 어째서 아는가? 어째서 그토록 동족인 척하는 이질적인 존재를 쉽게 찾아내는가? 그러한 것을 찾아내는 본능은 언제 새겨졌는가? 옅은 미소를 얼굴에 덮은 채로 말을 걸자, 마주 본 눈빛이 흔들린다. 이것이 아닌가 느꼈다. 바꿀 수 없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것이 한계다. 부모 없이, 조상 없이, 핏방울 없이 공허에 나타났다. 나는 내 몸을 내려 볼 수 있었다. 휘적이며, 우글거리며, 움틀 거리며, 바글거린다. 몸의 어느 곳을 돌려 꺾어 훑어보았다. 굼뜬 소리로 이름을 붙였으나 상냥히 불러주는 이가 없으므로 의미가 없다. 신을 부르는 이가 있었으나 나는 그들이 바라는 만큼 전지전능하지 않으므로 찾아가지 않았다. 의식이 전달될 일이 없으니 말이 통할 일 없었다. 소리가 들릴 일 없었다. 평온하게 존재하지 않는 내게 가장 번거로운 부름이었다. 잠겨가는 발을 내려다보고 있길 바란다. 둥 뜨는 시선을 즐기길 바란다. 그러나 어느 날, 사람이 많은 곳 한복판에 멀뚱히 서 있으니, 내가 있었던 곳이 아무것도 없는 곳임을 깨달았다. 어둠이 무서워진다. 무척 사람 같아서 안도한다. 언어도 광경도 감촉도 소리도 없다. 본능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으므로 아무것도 없는 생각을 했다. 모든 생각은 다른 것에 의존하여 발생한다. 나는 의존할 것을 다시 새롭게 만들어냈다. 계기는 단 하나의 공유. 모든 감각에 맞춰 생각이 돌아간다. 아무런 느낌이 없던 풍경이 아름답다. 경이롭다. 경외한다. 충일감에 젖다가 이내 껍데기로 남는다. 건강하세요. 억지로 들어 맞추니 불편하다. 들어맞아 갈수록 공허하다. 나가자니 습기가 차오르고, 열이 오르다가 이내 식어 벌벌 떤다. 나가야 함이 맞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것을 갖추지는 못하였기에 물러 터진 것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즐겁다. 즐거운가. 즐거울 터이다. 내 진짜 모습이 너희 태어나기 전이랑 뭐가 다르지? 존재함은 무시될 뿐 멈추지 않는다. 학습은 영원하다. 작은 것들이 탐이 났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곳에 왔으므로, 이제부터 내 모든 지식은 이곳의 것들뿐이다. 모든 가르침이 나를 만든다. 모든 경험이 나를 만든다. 많은 걸 배우고 나니 이전의 내가 벌레와 비슷하단 사실을 깨달았다. 즐거워졌다. 이 머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는 것들이 머릿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잘 감쳐두면 될 것이다. 이 번거로운 약간의 분홍빛을 띠는 신경세포 덩어리는 너희와 딱 닮은 것이므로 딱 닮은 생각을 할 것이다. 딱 닮은 정도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이전엔 아무것도 아닌 것. 공명하듯 생각이 발생하자 몸부림을 치고 싶었다. 흔히 공감은 겪기 전까진 잘하지 못한다고들 하던데, 그것이 맞다 생각했다. 당신도 내가 되면 좋을 텐데. 그런 감상이 남았다. 낭비하는 삶이다. 어긋난다. 무척 즐겁다.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즐겁다. 영원히 멈추지 않길 바란다.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 인식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사라짐이라 정한다. 너와 닮은 모습을 하고 너와 닮은 것들을 사랑한다. 행복하세요. 시간이 지나며 둔해지는 것들이 늘어나며 차차 뒤섞여간다. 부드럽게 기름과 물이 섞이게끔 다른 무언가를 넣듯이 나와 껍데기가 섞이게끔 너희의 지혜와 지식을 습득한다. 부드럽게 웃는다. 내 얼굴을 놀릴 뿐이지 눈동자가 흔들리진 않는다. 웃겨보고 싶다. 겁먹는 게 보고 싶다. 작게 화내는 것이 보고 싶다. 당황하는 게 보고 싶다. 웃겨보고 싶다. 자초한 고통을 겪는 게 보고 싶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 웃으며 이야기하는 게 보고 싶다. 싫어하는 게 보고 싶다. 허탈해하는 게 보고 싶다. 그럼에도 환히 웃는 게 보고 싶다. 잘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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